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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코칭 프로그램

기술이전 사업화 TLO 업무에 대한 회고

by cttagent 2020. 9. 25.

기술이전 사업화 TLO 업무에 대한 회고

본격적인 기술 이전 사업화에 대한 내 행보는 (사)한국기술거래사회에서 2010년 이재일 회장님 때 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이재일 회장님은 중앙대학교 창업대학원 교수였고, 난 그 수업을 받던 졸업반 학생이었다.

이재일 회장님 추천으로 (사)한국기술거래사회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같은 대학원에 창원이형, 현경이, 지성이형 기타 이 분야에 관심있는 대학원분들도 한국기술거래사회 연구 클러스터를 만들면서 본격화 되었다.

이재일 회장님. 이때만 해도 기술거래사회 보수교육들이 있었다.
이 시절 참 서로가 의욕 충만했는데...

이 무렵부터 창원이형과 난 콤비가 되었던 것 같다. 그 시절 힘들긴 했어도 서로 마음이 잘 맞아 일은 참 즐겁게 했었다.

지성이 형은 늘 열심히 한다.
창원형과 나는 늘 일을 마무리하고, 모서리 한 귀퉁이에서 처량하게 밥을 먹었다. 이때 밥 먹는 정이 많이도 쌓였던 것 같다.
피곤하지...쉬는시간...   자는 거 아니다. 생각하는 거다.
깊게 생각하는거다....
이게 자는거다... ㅎ.  현경이가 찍었던 걸로 기억한다.  현경인 참 열심히 하는 친구였는데.... 지금와서 생각하니 누구 때문에 현경일 잘 챙기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단 생각이든다.

이재일 회장님이 술을 좋아하셨다. 기술거래사는 술~ 거래사라시며....

늘 뒤풀이가 술집으로 끝났다.

술을 잘 하지 못하는 나에겐 참 곤욕스러웠다.

그래도 오랜만에 필드 거래사분들과 얼굴을 뵐 수 있는 기회라서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아마도 이때 뵙던 분들이 지금까지 가는 것 같기도 하고...

 

간혹 사무국을 너무 힘들게 하는 거래사분들도 있어 눈살을 찌푸릴 때도 있었다.

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사실 누구에 잘못도 아닌 것 같다. 입장에 차이일 뿐.

 

뒤늦게 갖는 우리들 만에 뒤풀이... 이 시간이 참 좋았다.
협회 발전방향도 생각해보고... 연구 클러스터로써 나름에 아이디어들도 편하게 교류하고... 이 땐 모두들 의욕이 충만해서 좋았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이 한국기술거래사회 로고를 내가 디자인 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거래사님들 제가 했습니다요...

 

나 때는 기술거래사 등록교육이 1년에 두 번 할 때도 있었다.
지금은 일 년에 한 번으로 거의 확정된 것 같다.

 

당시에는 기술거래사 등록자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기에 협회 내에선 되도록 많은 기술거래사를 배출하고자 노력했다.

이는 한국기술거래소도 없어지는 마당에 정부기관에선 기술이전 사업화 촉진법을 만들어 놓고도 이렇다 할 기술거래사들에 권익증진을 위한 제도 개선과 먹거리 창출을 소홀히 하였기에 기술거래사를 많이 배출하여 우리에 힘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경쟁관계에 있던 모 민간 협회에서 `기술거래사를 남발한다`는 언론 플레이로 몰아가는 바람에 한동안 그 오명에 고개 숙여야 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더 아이러니하게도 적은 더 내부에 있었다. 바로 기술거래사 자격을 쉽게 취득하신 회원분들이었다.

이분들은 주로 실제 기술거래를 하지 않았으면서도 심사방식과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 기술거래 계약서에 본인의 이름을 어떤 형태로 추가하여 3건 이상 증빙자료를 제출하는 방식으로 너무 쉽게 취득하신 회원분들이었다.

 

당연히 이분들은 실제로 기술거래를 경험해보지 않았으니 이 공인 등록증이 우습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이분들에게 묻고 싶다.

실제 당신들이 유망기술을 발굴하고, 수요기업을 찾고, 기술가치 평가를 하고, 협상의 난항을 해결하고, 실제 기술이전하고, 기술이전 받은 기업이 상용화 개발에 성공하도록 인큐베이팅하고, 매출을 발생하도록 돕고, 경상기술료를 받기가 쉬운 일인가를....... 제발 해보고 그 자격을 취득하시길 바란다.

 

이러한 점에서 기술거래사 자격 취득은 더 강화되어야 한다.

단순 기술거래 계약서를 증빙자료로 제출하기 보다.

그 해당 거래가 실제 경상기술료를 취득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게 더 맞다.

기술거래 계약 후 경상기술료를 받았다는건 기술이전사업화의 전 업무트랙을 기술거래사로써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성적표이기에....

 

아무튼 이러한 취지를 모른 체 기술거래사 자격을 너무 쉽게 본인들이 취득했다고 생각해서 아무것도 아닌 자격증이라는 식에 말을 하고 다니는 게 답답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산업통상자원부에 `기술의 이전 및 사업화 촉진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이 분야에서만큼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인정하는 공인 등록증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자격을 취득 후 기술거래사가 할 수 있는 업무영역을 참고한다면 이해가 빠르다. 한국기술거래사회의 `기술거래사의 업무영역`을 참고해보길 권한다. www.kttaa.or.kr/subPage.html?mode=5&subID=4&cate=linkContents

 

(사)한국기술거래사회-기술거래사 업무

기술의 이전 및 사업화 촉진에 관한 법률 참고     1.   기술이전·사업화 대상 기술의 파악, 수요조사, 분석 및 평가     2.   기술이전·사업화 정보의 수집·관리·유통 및 관련 정보망 구��

www.kttaa.or.kr

기존에 기술거래사를 혹여나 쉽게 취득하신 분이 계시다면 이젠 정신 차리시길 바란다. 직접 실무에서 일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런 말들을 필드에서 들을 때마다 사실 유쾌하지 못하다.


정말 누워서 침 뱉기라는 걸 왜 모를까? 이점은 늘 아쉬움이 많이 남는 대목이었다.

 

지금은 기술거래사가 5,000명 이상이 넘었다고 한다.
이젠 시험제도가 도입되었으며 갈수록 자격 취득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지금 이미 현장에선 등록교육 후 시험에 떨어져 자격을 취득 못하는 사람들이 발생하고 있다.

세무기관에서는 기술거래사 등록세를 징수할 정도로 큰 위치에 공인 자격증(등록증)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기술거래사 자격증(등록증)이 뭐 대단한 자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습게 볼만한 자격증(등록증)도 아니라는 뜻이다.


만일 앞으로 이 분야에 자격을 취득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면 유사 민간 자격증 광고에 현혹되어 쓸데없는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부디 공인 등록증과 민간 자격에 차이를 잘 구분하고 그 가치를 충분히 살핀 후에 기술거래사 자격을 취득하길 바란다.

 

 
이때는 꽃 마담을 내가 자주했었구나.
그 시절 난 창원이 형에게 의지를 많이 했었다. 난 형이 없어서였는지... 인간적으로 참 좋아했었다.
늘 혜정이를 가까이서 봐 왔지만, 내가 본 혜정이는 이때가 제일 예뻤던 것 같다.

 

이 시절 가장 좋았던 때!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 그래서 인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다!  이분들과  함께여서 행복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 국방`이 이슈화되면서 국방과학연구소에도 기술이전 부서가 처음으로 대폭 확대 개편되었다.
처음에 내가 들어갔을 때만 해도 명칭은 `국방기술사업단!` 이었고, 그 이후 민군협력진흥원 내 `국방기술사업부`로 지금은 명칭이 바뀐 상태다.

 

 

국방과학연구소의 이전 기술을 민간 기술이전 관점에서 볼때,

장점은 단순히 페이퍼 기술(특허만 있는)이 아니라, 실제 육해공군에서 이미 쓰고 있는 완성도가 높은 기술을 민간에 기술 이전해준다는 점이고,

단점이라 함은 국방기술은 군사무기체계에 기반하여 기술이 완성되기 때문에

부품이나 제원 구입비에 대한 시장의 경제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기술이라는 점이다.

만일 민간에서 국방기술에 이전을 고려하는 기업이 있다면 이러한 부분을 충분히 고려하여

시장 경제성을 갖추면서도 민간 사용 기술로 상용화 개발이 가능하다면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시절을 회고하며 기억해 본다.

이 시절 난 두 곳을 지원했었는데 

재단법인 여성 기업종합지원센터와 국방과학연구소였다.
두 곳 모두 붙었는데 국방과학연구소가 더 규모가 커서인지 인사절차가 너무 길었다.
그래서 먼저 일하게 된 곳은 (재) 여성기업종합지원센터이다.


정규직으로 기술사업화 담당 과장으로 직함을 받았고,

여성 기업들에 기술 사업화 인큐베이팅 하는 게 주요 업무였다.

기억에 남는 건 수출유망한 여성기업의 해외 판로개척 및 수출확대를 위해서

홍콩 메가쇼 선물 박람회 참가기업을 모집하고

선정된 여성 기업 10개 업체를 데리고

홍콩 메가쇼 선물 박람회에 출전하는 거였다.

2013. 10. 20. ~ 10. 23(4일간).... 혼자서 두명에 대학생을 보조로 데리고 10개 업체를 캐어하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던 중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최종 합격했으니 입소하라고 연락이 왔다. 

 

사실 고민을 많이 했다. 내 나이가 있고.. (재)여성기업종합지원센터는 정규직이었고,

국방과학연구소는 계약직이었기에.....

하지만 공고에 계약직에서 정규직 전환 조건이란 명시가 되어 있었기에 믿고 입사를 결심하고

(재)여성기업종합지원센터를 퇴직 후 국방과학연구소로 이직하게 되었다.

나 자신을 다독이면서 생각했다. `그래 어차피 충성하는 거라면, 여성 보단 국가에 충성하는 게  나은 일이라 생각했다.` 

 

국방과학연구소 시절.

입소 동기들! 연구소는 입소 동기가 있다.

이들을 보면서 난 내가 참 늦은 나이에 이곳에 입사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좋은 녀석들이다. 하지만 국방과학연구소의 특성상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살아가서인지...

지금까지 연락이 되는 녀석은 세 녀석 뿐인 것 같다.

 

대환이~..  ㅎㅎ  이녀석은 참 팔색조다!
이때 이 녀석을 보면 살이 참 많이도 빠져있다. 현대자동차에선 고급인력이었을 텐데... 국방과학연구소 와서는 ..... 직장 내 막내가 다 그렇다...

국방과학연구소 국방기술사업단! 

처음 내 책상을 배정 받던 날! 찍었던 사진인거 같다.

 

왠지 이 녀석과 함께한 듯 싶다.
밖에선 죽어라 일만 했었다.... 국방과학연구소에 와서 좋은 사수와 선배님들을 잘 만나서 족구도 할수 있었고...
공에 집중하는 최성희 선배는 언제봐도 멋지다.
점심시간에는 일찍 밥 먹고 동호회 축구도  할 수 있는 좋은 직장이었다.
그러다 오랜만에 장비 욕심도 생기기 시작했고.
단지.. 서울에서 대전에 내려와 2년간 연구소 내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한다는게 답답하긴 했다. 업무가 끝나고 나면 바보가 된다. 아는사람도 없고 대전에 갈 곳도 없었다. 주말이 돼서야 겨우 시골 집에 내려가서 부모님 얼굴 보는 게 낙이었던것 같다.

새 책상 옮긴지 얼마나 됐다고 또 자리를 옮긴다...  계속 자리를 바꾼다....   입사 후 이사만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부서 내에서 내가 막내다 보니... 그래도 예전엔 내 밑에 많을 땐 11명이나 있었는데...

이 나이에 여기선 내가 막내가 된다..

 

이번엔 이정구 팀장님 단독방으로.... 또 책상을 옮긴다. 단 둘이 있어야만 하는 불편한 자리라...  아무도 안갈려고 하는걸

누군가 피해를 볼것 같아서 막내인 내가 가는게 났겠단 생각에 그냥 내가 자처해서 갔다.

아마도 이때 부터 이정구 센터장님과는 정이 들어 갔던것 같다.  처음엔 이 공간이 어찌나 불편했는지...

이때부터 내 밑에 막내가 빨리 와주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입소 당시에는 그래도 이 책장에 빈 공간이 많았구나...

또 이사를 간다...

이번엔 연구소 밖으로 이사를 갔다.

국방기술사업단이 부로 더 크게 바뀌면서 연구소 밖에 `반석역` 주변 건물 한동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사 후 개원식전...좋은 사람들과 사진도 찍고.

기술이전 조직이 `단`에서 `부`로 승격되고 향후 발전방향 등을 논의하기 위해서 워크숍을 갔던 것 같다.

안명식 팀장님. 김인우 원장님. 이정구 팀장님. 이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에 국방과학연구소 `국방기술사업부` 기술이전 체계가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다고 본다. 특히나 국방 무기체계의 보안성을 생명으로 생각하는 패쇄적인 국방부 내에서 이러한 개혁 마인드를 갖기란 쉽지 않다.

 

여기서 부터 나도 본격적인 부서 내 기술이전 업무를 시작했던 것 같다. 조직도 자리를 잡았고 이제 대외적인 기술이전 실적을 올리는 것이었다.

 

제일 먼저 배당된 업무는 국방 유망기술 발굴과 SMK 였다.

내가 입소 했을 땐 이미 국방기술 아이디어 100선이 있었다. 그러나 이 SMK는 민간 기술이전에 사용하기엔 적절치 않았다. 대부분 지식재산권이 미 확보된 아이디어를 도출한 형태였기 때문에 기술이전 라이센스를 확보하는게 불가능한 상태였다.

최성희 선배와 난 각 연구 부서별 특허 출원 자료를 요청하고, 분류하고, 정리하고, 기술의 완성도 TRL을 체크하고, 실제 기술이전 사업화가 유망한지 여부를 분석한 후, 최종 SMK 국방기술 100선 책자를 만들었다.

 

2015년에는 김성익 박사님과 함께 작업하였다. 전년도에 비해서 SMK 사업비가 너무 줄었다.

김성익 박사님이 고생해 주셨지만 사업비가 너무 적어 외주업체의 디자인 퀄리티도 많이 낮았다.

결과적으로 SMK 책자 퀄리티가 많이 떨어진 점은 아쉬웠다.

현수막도 검수하고
판넬 및 네이밍 작업도 검수하고

이제 SMK 도 만들어 졌겠다. 본격적인 기술 마케팅에 돌입했다.

년간 기술이전 마케팅 마일스톤 계획을 수립하고, 각 업무분장을 한 후, 전국에 기술이전 설명회를 시작하였다.

기술보증기금과 함께
국방벤처, 벤처기업, 국과연, 대전시와 함께

 

 

S&T 엡체 기술이전 미팅
내가 좋아했던 K1 강석종 박사님. k2 강대업 박사님.
이형술 박사님. 나. 김인수 박사님.  평상시 늘 이런식으로 출장을 갔던 것 같다.
김인우 원장님. 이 곳에도 와주셨었구나...   구글 클라우드 덕에 잊고있던 기억을 찾기도 한다. 
김명식단장님. 김인우 원장님.  ? . 이형술 박사님. 정홍용 소장님.
많은 곳들을 갔던 것 같다.
늘 경쟁심리를 갖고 찾아보곤 했던 에트리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이름이 생각안난다. 여기서 인사나눈 분도 ADD로 왔다.

 

 

 

 

한해 동안 기술설명회를 마치고 나면, 년말에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공로를 치하하기 위해서 `기술사업화대전`을 치른다.

 

 

이런 화려한 작업들 뒷면에는 막내들에 고충이 있다.....

비오는 날 박스를 나르고
또 박스를 나르고
또 박스를 나르고
또 박스를 나른다....
그리고 행사전 날! 잠은 용사의 집에서 자거나, 모텔에서 자고, 행사장이 멀 때는 사우나에서 잔다.

당시에는 연구소가 기술이전 마케팅 네트웍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어

디를 타겟팅하여 기술마케팅을 해야하는지 몰라 독자적으로 특정 기업과 연락이 오는 곳 등으로 기술마케팅을 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부분은 참 아쉬운 부분이다. 유관기관과 공동 기술이전 마케팅을 하는게 

 

기업들 상대로 기술마케팅을 전국에 유관기관과 함께 

 

메뉴얼 개발작업

보는 사람마다 의견이 달라지는...보고 문구에는 쓸데없이 문구를 또 고치고, 또 고치고, 간격 조절하고, 또 문구를 고치고.....
이러다 퇴근은 뒷 전이고, 난 갈 집이 없으니..... 야근하다. 연구소 기숙사로 향한다....

 

효율적인 기술이전을 위한 업무 매뉴얼 개발 작업 착수.

문제는 기술이전 실적인데... 이렇게 열심히 한해를 뛰어도 가시적인 기술이전 성과가 잘 나지 않았다.

한해를 돌아보니... 국방기술 이전만의 특이성인 `보완성 문제` 때문에 기술이전 소요기간이 너무 길어지고, 이를 업체는 기다리지 못하고 중도에 기술이전을 포기한 건들이 많았다.

체계적인 국방기술 이전 표준 메뉴얼이 필요했다....

술 아이디어 100선이 있었다. 그

러나

나중에 또 정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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